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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사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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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사러 가요

라이프스타일을 짓는 쌀가게 4

매일 먹는 쌀을 재료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상점이 세계 곳곳에서 움트고 있다. 남다른 기획력과 쌀에 대한 의외의 접근으로 유혹하는 각양각색의 쌀가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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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의 편집’을 시도한 신개념 쌀가게
아코메야

‘아코메야アコメヤ’가 출범하기 전까지 쌀가게는 좁다란 골목이 이어진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하기 마련이었다. 산지만 표시한 커다란 쌀 포대를 마구잡이로 진열한 투박한 풍경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쌀가게의 이미지다. 2013년 일본 라이프스타일 산업의 대표 주자 사자비 리그サザビーリーグ가 금싸라기 땅인 도쿄 긴자에 오픈한 아코메야는 기존의 쌀 판매 방식과는 다른 접근으로 초기부터 이목을 끈 쌀가게다. ‘밥은 식탁의 행복을 찾아주는 출발점’이라는 믿음으로 쌀의 가치를 재 정의해, 단순히 쌀을 판매하는 것에서 나아가 쌀 구매자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한 조미료와 반찬, 우아한 상차림을 위한 식기, 쌀을 가공한 사케와 과자에 이르기까지 쌀을 둘러싼 라이프스타일 상품을 한자리에 그러모았다. 발품을 들여 일본 전역에서 생산한 25종의 쌀을 엄선하고, 이를 차짐과 부드러움을 기준으로 X축, Y축의 사분면에 표시해 판매한다. 현미부터 백미에 이르기까지 5단계로 나누고 원하는 도정률을 선택하면 그 자리에서 쌀을 깎기 시작해 성인 2명이 배를 채우기에 적당한 300g 분량으로 소포장한다. 적당히 끼니를 때우기보다 취향에 맞는 쌀을 다양하게 맛보도록 한 배려다. 긴자 본점의 성공에 이어 현재 일본 열도 전역에 11개의 분점을 운영 중인데 한 곳만 방문할 수 있다면 ‘아코메야 주방’이 있는 긴자 본점으로 향해보자. 갓 지은 솥밥과 함께 밥맛을 살리는 제철 반찬거리로 구성한 정식을 맛볼 수 있다. akomeya.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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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기업이 만드는 오늘날의 백옥쌀
동춘175

용인시 경전철 초당역에서 내려 골목 어귀를 걷다 보면 멱조산을 등지고 선 커다란 건물이 불쑥 드러난다. 1968년 부산에서 시작한 ‘토종’ 의류 기업 세정그룹에서 문을 연 ‘동춘175’다. 세정그룹의 모태이자 박순호 회장이 부산 중앙시장에서 개장한 의류 도매점 ‘동춘상회’와 현재의 도로명주소인 ‘175’에서 이름을 따 오랜 시간 폐허로 남아 있던 세정그룹의 물류 창고를 감각적인 라이프스타일 편집매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제철’과 ‘지역성’을 키워드로 풀어낸 공간에는 경남 거창에서 30년 경력의 국수 장인이 만든 ‘거창한 국수’, 경북 청송의 특산품인 ‘청송백자’를 비롯해 ‘로컬’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물건이 한가득이다. 비슷한 결을 가진 셀러를 한자리에 모으는 것에서 나아가 흔히 경기미로 잘못 알려진 용인의 쌀 브랜드 ‘백옥쌀’을 리브랜딩하며 쌀가게로 출사표를 던지기도 했는데, 그 시작은 맛없는 쌀에 무뎌진 시장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쌀 소비가 적어진 대신 조금 비싸더라도 ‘맛있는’ 쌀을 택하는 흐름에 발맞춰 용인시와 협업해 품질 좋은 백옥쌀을 선별하고 갓 도정한 쌀의 풍미를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진공포장 기법을 동원했다. 진열대에는 500g씩 소량 포장한 쌀과 설탕 없이 조청과 물엿으로 만든 ‘교아당’의 수제 강정이 나란히 놓여 있다. 백옥쌀 500g과 천연 재료를 넣어 달인 ‘부엉이 곳간’의 맛간장, 국내 1호 명장 호칭을 받은 장석준의 김, 참기름 등으로 구성한 ‘잘먹기’ 세트는 맛과 멋을 두루 챙긴 선물로 손색없다. dongchoonmark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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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주고받는 경험의 즐거움
그린 인 핸드

매년 5월 1일, 근로자의 날이 밝으면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의 신이信義 비즈니스 지구에 자리한 ‘그린 인 핸드Green In Hand’ 앞으로 긴 행렬이 생긴다. 대만 남동부에 위치한 타이둥臺東에서 경작한 쌀 ‘반선생飯先生’을 구매하기 위해 작은 가게 안으로 종일 방문객이 잇따르기 때문이다. 재활용할 수 있는 종이 골판지를 복주머니 형태로 만들어 그 안에 쌀을 담고, 경작지와 농부에 관한 정보를 근사한 캘리그래피로 표현한 다음 볏단을 묶는 새끼줄을 연상시키는 라탄 손잡이를 매달아 완성한 반선생의 쌀 패키지는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비롯해 각종 디자인상을 거머쥔 그린 인 핸드의 대표 상품이다. ‘먹는 쌀’을 보는 쌀, 선물하는 쌀로 확장시킨 주역은 이곳을 이끄는 천윤이程儀 대표. 쌀을 재배하는 농부의 희생을 알리고 직거래를 통해 쌀을 보다 투명하게 유통하고자 2006년 그린 인 핸드를 설립했다. 그린 인 핸드는 직접 발로 뛰어 유기농법으로 농사짓는 농가를 수소문해 계약을 체결하고, 그렇게 판매를 시작한 쌀에 대한 정보는 홈페이지에 공지해 쌀을 구매하기 전 소비자가 이를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게 했다. 농부, 경작지, 품종, 관개용수, 도정률, 저장고 등에 이르는 정보가 화면 가득 빼곡하다. 끼니의 개념에서 벗어나 선물이나 이색적인 먹을거리로 확장시키기 위해 패키지 디자인에도 공을 들인다. 결혼의 기쁨을 나타내는 ‘쌍희 희囍’문자를 종이 공예로 표현한 ‘희미喜米’ 등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에디션이 있어 선물로 제격이다. 천윤이 대표는 환경을 생각하는 의식 있는 농부들을 널리 알리고자 농가 관광 상품도 개발 중이다. “쌀의 풍미에 관해서는 많은 논의가 이뤄져왔지만 생산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소비자가 농부를 직접 만나면 쌀을 보는 시각에 큰 차이가 생길 것이다. 많은 이들이 견학을 통해 쌀을 둘러싼 다양한 문화를 즐기기를 희망한다.” greeninha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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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과거와 현재를 잇다
이엔찐파샨하오

타이베이의 중심지에서 벗어난 구시가지 디화제迪化街는 서울의 경동시장처럼 대만 전역에서 생산한 약재와 건조 식품을 구경할 수 있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800m에 이르는 거리에는 18~19세기에 개점한 한약방을 포함해 세월의 더께가 물씬 느껴지는 노포 500여 개가 늘어서 있다. 이곳에서 1923년 개점한 역사 깊은 쌀 도매점을 개조한 쌀가게 ‘이에찐파샨하오葉晉發商號’가 지난 2016년 문을 열며 동네가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붉은 벽돌로 지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입구를 지나면 노송나무로 멋을 낸 세련된 공간이 펼쳐진다. 고슬고슬한 식감과 독특한 향미 덕분에 대만을 대표하는 ‘명품’ 쌀로 평가받는 ‘태경 9호 미台梗九米’를 비롯해 대만 전역에서 공수한 쌀 20여 종은 물론 식초, 소금, 대만 고유의 조미료인 샤차장沙茶醬 등 한 끼를 풍성하게 하는 식재료를 폭넓게 다룬다. 산지에 따른 쌀의 특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인포그래픽을 살피며 취향에 맞는 쌀을 고르고, 맛있는 밥과 어울리는 반찬을 구매하거나 밥맛을 살리는 식기까지 한자리에서 구입할 수 있는 원스톱 쇼핑 공간인 셈이다. 반질반질 손때가 묻은 핸드 레일을 따라 2층으로 오르면 대만의 농경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전시장이 반긴다. 100여 년 전 쌀 도매점에서 실제로 사용한 도정기와 목제 뒤주 또한 전시해 공간의 역사성을 고스란히 살렸다. sunrice1923.com


전여울
출처 럭셔리 5월호
디지털에디터 장은별

럭셔리
사치가 아닌, 가치에 대한 이야기 
Updated  201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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