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집

공식채널

듣고 싶은 만큼만 들을래요

듣고 싶은 만큼만 들을래요
괜찮을까

듣고 싶은 만큼만 들을래요

소니 헤드폰 리뷰

소음은 가차없다. 예고없이 귓속을 때리고, 들리는 동안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게 만든다. 버스에서 낯선 이의 ‘투 머치 인포메이션’을 원치 않아도 들어야 할 때. 모처럼 푹 퍼져 있고 싶은 휴일, 공사장의 날카로운 소음이 나의 작은 방을 공격할 때. 카페로 도망갔더니 도저히 취향에 안 맞는 선곡들이 큰 소리로 울려 퍼질 때.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지난 9월 소니가 출시한 소니 무선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 WH-1000XM3를 한동안 써봤다. 작년보다 고통의 역치가 낮아진 건지. 고작 소음으로부터 몇 걸음 물러났을 뿐인데, 몇 해 전 불티나게 팔리던 ‘힐링’이라는 단어가 계속 생각났다.

img_2

고요한 밤, 거룩한 노이즈 캔슬링


몰랐다. 내가 이렇게 소음에 지쳐 있었는지. WH-1000XM3를 쓰는 동안 카페, 회사, 버스, 지하철, 오만 데서 헤드폰을 끼고 살았다. 듣기 싫은 소리가 들려도 도망칠 수 없는 공간이면 어김없이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꺼내 들었다. 뜬금없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 고학년 오빠, 언니가 있는 애들은 정말 든든해 보였다. 걔들은 누구랑 싸워도 의기양양했다. 가방 속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은 나한테 그런 존재였다. 시끄럽게 해봐라. 나 이거 있거든.
img_3
노이즈 캔슬링의 원리, ‘단짠’이다.
노이즈 캔슬링이란 무엇인가. 지루하니까 짧게 설명해보자. 헤드폰은 구조적 특징상 공기가 지속적으로 진동판에 유입된다. 이때 외부 소음도 헤드폰에 들어오게 된다. 헤드폰 내외부의 센서가 외부 음파를 감지하면 내부 센서가 재빨리 반대 음파를 만들어 재생한다. 소리로 소리를 상쇄한다는 개념이다. 소니 관계자는 “쉽게 비유하자면 소금을 먹은 상태에서 설탕을 같이 먹어서 짠맛을 상쇄시키는 것과 유사한 원리”라고 빗대어 말했다.
소니는 지난 2008년 MDR-NC500D를 출시하며 세계 최초로 디지털 노이즈 캔슬링을 선보였다. 아날로그 노이즈 캔슬링의 경우 외부 소음을 단순한 방식으로 수집한다. 처리도 여러 회로를 거친다.
이에 비해 디지털 노이즈 캔슬링은 모든 과정을 디지털 칩셋으로 처리한다. 위상 생성에 있어 정밀도와 처리 속도가 훨씬 빠르다. 소니는 노이즈 캔슬링을 위해서는 “외부 소음을 얼마나 빠르게 분석하고, 반대파를 재생하는지가 핵심”이라며 칩셋 성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img_4
홍대 청음샵에서 다른 제조사의 기기들도 써봤다. 소니로 시작해서 그런가, 내 귀에는 소니가 내는 소리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소니는 헤드폰 제조사 중에서는 드물게 자체 칩셋을 만들고 있다. WH-1000XM3에도 소니가 새롭게 개발한 HD 노이즈 캔슬링 프로세서 QN1이 들어갔다. 덕분에 전작 대비 4배 더 빠른 프로세싱 능력으로 압도적인 노이즈 캔슬링 성능을 자랑한다. 프로세서 QN1은 노이즈 캔슬링 외에도 내부에 DAC와 AMP를 통합 지원해 최대 32비트(bit) 오디오 신호 처리를 가능케 한다. 기존 대비 음질이 뛰어나다는 의미다. 전작도 써봤고, ‘막귀’임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2세대 헤드폰보다 개선됐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예 모든 소음이 안 들리는 건 아니다. 소음이 있는 곳으로부터 멀어진다는 느낌이다. TV를 끈 정도는 아니지만 볼륨을 3으로 낮춰주는 수준. SF영화에서나 보던 방어막이 쳐진 듯하다. 웬만한 소음은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줄여준다.
img_5
원래는 멀미를 거의 안 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켜면 머리가 띵하고 속이 약간 울렁거렸다. 폐쇄형 헤드폰이라 쓰기만 해도 귀마개 역할을 톡톡히 해서, 아예 전원을 켜지 않고 쓰기도 했다. 이 멀미는 보통 조용한 곳에서 잘 느껴진다. 이건 WH-1000XM2를 쓸 때도, 보스 QC35 II를 쓸 때도 그랬다. 인터넷 찾아보니 나처럼 느끼는 사람이 다수는 아니다. 그래도 있긴 있다. 이런 데서 예민한 사람은 청음샵에 들러 확인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img_6

“불시에 뒤에서 습격을 받으면 어쩌죠?”


하도 조용하다고 말하고 다니자 동료에게서 날아온 질문. 오, 이 질문을 받고 나도 불안감에 휩싸였다. 사실 이런 폐쇄형 헤드폰은 쓰기만 해도 주변 소리가 어느 정도 차단된다. 여기에 노이즈 캔슬링 기능까지 풀가동할 경우 위험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사용자의 우려를 감안해 소니는 사용자의 행동 및 사용 환경에 따라 음악과 주변 소음, 음성을 최적화하는 기능을 지원한다.
‘주변 소리 제어 기능’은 비행기나 기차 등에 탑승하면 주변 소음을 아예 차단하는 노이즈 캔슬링을 활성화한다. 사용자가 걸을 땐 음악과 주변 소리를 함께 들려주는 ‘주변 소리 모드(일반)’로 자동 전환한다. 가만히 정지한 상태에서는 음성이 들리는 ‘주변 소리 모드(음성)’로 바뀐다. 모드가 바뀔 때마다 알림음이 나온다. 처음에는 거슬리지만 나중에는 적응된다.
img_7
동료 기자가 체험하는 모습을 찍었다. 섬세한 터치. 디제이의 끼가 느껴진다.
헤드폰의 오른쪽 하우징에 손을 대면 음악 소리가 일시적으로 줄어든다. 소니는 이 ‘퀵 어텐션’ 기능으로 헤드폰을 벗지 않고도 대화가 가능하다고 했지만 매너가 아니므로 말할 때는 헤드폰을 벗는 편이 낫다. 잠깐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용도로는 쓸 수 있다.
이 밖에도 주변 대기압을 분석해 노이즈 캔슬링 성능을 더욱 향상시켜주거나 사용자의 머리 크기, 헤어 스타일과 안경 착용 등을 분석하는 ‘개인 노이즈 캔슬링 최적화’도 지원한다.
img_8
소음이 차단되는 게 싫어서, 답답해서 헤드폰을 안 쓰는 사람도 많다.
유입되는 소리를 제어하고 걸어다니면 알아서 모드를 바꿔준다는 거, 물론 유용하다. 그러나 필요한 순간 내가 들어야만 하는 특정 소리를 판별해 들려주지는 않는다. 이어폰만 꽂고 걷는 것도 위험한 일인데,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은 얼마나 더 위험하겠나. 걸을 때 헤드폰은 포기하는 편이 안전하다.


img_9

달라 보여, 너


언뜻 사진만 봤을 땐 WH-1000XM2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실물을 영접하자 둘의 느낌은 판이했다. 전작은 이어패드 하우징 표면을 부드러운 가죽 느낌의 소재로 둘렀던 반면 이번에는 플라스틱을 썼기 때문이다. 오른쪽 하우징에 터치 센서가 있어서, 상하좌우로 터치 조작이 가능하다.
소니 말로는 사용자들이 헤드폰을 조작할 때 가죽 소재에 불편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미끈한 플라스틱을 채택했다…는 설명. 어쨌든 49만9천원이라는 가격표에 비해 약간 저렴해 보인다. 무게는 전작 대비 10% 가벼워졌다.
img_10
색상은 취향따라. 블랙은 어디든 무난하다.
요다 현상은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헤드 밴드 구조를 바꿔 디자인적으로 슬림하게 개선했다. 이번에 소니가 신경 쓴 부분은 하우징 내부 공간이었다. 우레탄 폼 이어패드로 좀더 푹신하게 만들었고, 귀가 닿는 곳은 전작 대비 20% 넓고 깊게 설계했다. 내부 각도도 귀의 경사에 맞춰 디자인했다고 한다. 왼쪽 귀를 새로 뚫은 지 이틀밖에 안 됐었는데도 착용하는 동안 별 문제 없었다.
img_11
도넛을 닮았다.
그렇다고 나처럼 종일 쓰는 사람은 없겠지. 생각없이 출근길부터 퇴근 무렵까지 썼더니 정수리가 아팠다. 머리도 호떡처럼 눌렸다. 짧고 숱 없는 머리, 양 옆과 정수리마저 납작해지니 심하게 볼품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쓰고 집까지 가야 했다. 머리 볼륨을 중시한다면 이 점 고려하시라.
아, WH-1000XM2는 다 좋은데 통화가 불편했다. 하우징 윗부분에 통화 마이크가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내 귀에는 잘 들려도 상대는 내 말을 못 알아들었다. 온갖 잡음이 다 들리고 말소리는 안 들리니 그냥 전화로 통화하라는 불평을 들어야 했다. 이번에는 마이크로폰이 달린 위치를 바꾸었다. 스마트폰보다는 못해도 대화에 지장이 없는 정도로 통화할 수 있었다.
img_12
배터리는 넉넉했다. 한번 완충으로 최대 30시간 사용 가능하며 충전 규격은 마이크로-USB에서 USB 타입-C 포트로 바뀌었다. 10분 충전으로 최대 5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고속 충전도 지원한다.
소니코리아 오쿠라 키쿠오 대표는 “완전히 새롭게 진화한 3세대 모델 WH-1000XM3는 소니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프로세서 QN1’을 탑재해 압도적인 노이즈 캔슬링을 구현하여, 단지 소음을 줄여주는 시대를 넘어 소음이 사라지는 시대로 이끌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소음을 흐릿하게 만들어주긴 해도, 완전히 사라지게 해주는 건 아니다. 그래도 이 무자비한 소음의 세계에서 WH-1000XM3 정도라면 충분히 훌륭한 방어구가 되어줄 거다.


img_13

에디터 김인경

블로터
디지털 세상을 읽는 눈 
Updated  2018-11-20
괜찮을까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