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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XR을 써보니

‘아이폰 XR’은 지난해 애플이 내놓은 ‘아이폰X’의 후속 제품 중 하나다. 지난해 애플은 아이폰X을 내놓으면서 앞으로의 10년을 이야기한 바 있다. 돌아보면 이는 특정 제품을 언급한 것이 것이 아니라 화면으로 가득한 앞면, 그리고 버튼 대신 제스처를 이용하는 입력 방식 등의 변화를 짚은 쪽에 가깝다. 아이폰X이 그 정답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스마트폰으로 움직이겠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그리고 이 급진적인 제품이 시장에서 자리를 잡자 애플은 1년 뒤 작은 변화를 주는 제품들을 다시 꺼내놓았다. 기준이 되는 ‘아이폰XS’, 화면 크기를 극단적으로 늘린 ‘아이폰XS 맥스’, 그리고 LCD를 이용한 ‘아이폰X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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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XR은 어떤 제품일까? 기본적으로 아이폰XR과 아이폰XS는 몇 가지 선택지를 달리한 같은 세대 제품이다. 같은 시리즈라고 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애플이 집중한 부분이다. 이번 세대 아이폰들의 가장 큰 특징은 A12 바이오닉 프로세서다. 머신러닝 기반의 프로세서를 이용해 기기와 앱 생태계의 잠재력을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세대 제품은 모든 제품이 같은 프로세서를 이용한다. 작동 속도나 성능도 별 차이가 없다. 메모리는 3GB로, 아이폰XS의 4GB보다 낮지만 쓰면서 차이를 느끼기는 어렵다.
디자인은 아이폰X의 분위기를 따른다. 재질은 유리와 알루미늄을 쓴다. 옆면은 7000 시리즈 알루미늄이다. 아이폰8까지 우리에게 익숙하게 쓰이던 그 소재다. 아이폰XR은 6가지 색으로 나오는데, 알루미늄도 제품 색깔에 따라서 색을 입혔다. 뒷면은 투명한 강화유리로 처리했고 유리 아래쪽에는 각 제품의 색이 표현된다. 전체적인 색감은 제품 사진들로 보이는 것보다 광택이 적다. 흔히 ‘매트하다’라고 표현하는 느낌이다. 옆이나 뒤를 언뜻 보면 아이폰8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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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CD는 핸디캡인가


가장 큰 차이는 화면이다. 아이폰XR은 6.1인치 LCD를 쓴다. AMOLED를 쓴 아이폰 XS 시리즈보다 화면 주위에 검은 테두리가 더 있긴 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콘트롤러나 백라이트 등이 필수인 LCD로 끝까지 활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베젤이 신경 쓰인다면 색이 있는 제품보다 블랙을 고르면 거의 신경 쓰이지 않는다. 해상도는 1792×828픽셀이다. 326ppi로, 기존 아이폰8 플러스와 같은 픽셀 밀도다. 화면이 더 작은 아이폰XS보다는 해상도가 낮긴 하지만 픽셀이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다. 더 고해상도가 필요한 펜타일 방식의 AMOLED와 LCD의 해상도 특성이 다르다고 해석한 듯하다.
iOS12는 이 디스플레이를 기존 아이폰 플러스 계열이나 아이폰 XS 맥스처럼 대형 화면으로 분류한다. 기기 설정에서 확대 모드를 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아이폰XS는 작은 화면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아이폰XS보다 아이폰XR이 한 화면에 더 많은 정보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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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XS(왼쪽)과 아이폰 XR. 0.3인치 크고 해상도는 낮지만 iOS에서는 아이폰XR을 큰 화면으로 분류해서 더 많은 정보를 띄워준다.
어쨌든 이 디스플레이는 출시 전 많은 이들에게 걱정거리가 되고 있긴 하다. 아무래도 LCD보다 OLED가 고급 디스플레이로 꼽히고, 해상도 차이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폰XR의 LCD는 꽤 괜찮다. 해상도는 낮아 보이지 않고, 노치와 네 귀퉁이 곡면도 정밀하게 잘 잘라내서 계단 현상이나 색이 이상하게 비치지도 않는다. 백라이트를 쓰는 특성상 아이폰XS만큼 검은색을 진하게 내지는 못하지만 LCD의 픽셀을 여닫는 조리개가 개선돼 빛샘이 적고 색 표현력도 좋다. 돌비 비전과 HDR10 등 넓은 다이나믹 레인지로 만든 영상도 잘 보여준다.
특히 색 튜닝이 잘 되어 있어서 아이폰XR의 LCD와 아이폰XS의 AMOLED 화면의 결과물이 거의 비슷해 보인다. 지난해에도 아이폰X의 OLED와 아이폰8의 LCD 사이에 디스플레이가 일반적인 상황에서 화질을 크게 달리 보여주지 않았던 것과 비슷하다. 지난 1년간 아이폰X을 쓰면서 디스플레이에 자국이 남는 번인이 일어날까봐 마음 졸였던 것을 생각하면 LCD는 마음이 편한 부분도 있다. 디스플레이 때문에 걱정했지만 쓰다 보면 디스플레이 때문에 아이폰XS보다 아이폰XR이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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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면으로 잘린 디스플레이 부분에 이질감이 없다.
3D 터치는 빠졌다. 아이폰XR은 3D 터치 대신에 화면을 길게 누르고 그에 반응하는 ‘햅틱 터치’로 바꾸었다. 잠금 화면에서 아래쪽 카메라 버튼을 길게 누르거나 제어 센터에서 화면 밝기 조정 막대를 길게 눌러 나이트 시프트를 켜는 등의 용도로 쓸 수 있다. 버튼이 눌리고 있다는 느낌을 햅틱의 진동 신호가 전해준다. 조금 묘한 접근이다. 화면을 힘 주어 누르는 3D 터치는 호불호가 명확했던 기능이다. 3D 터치를 잘 쓰지 않았다면 더 쉽게 접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적어도 아이폰에는 UX가 통일되는 편이 낫지 않았나 싶다. 3D 터치에서 가장 익숙하게 쓰였던 커서 옮기는 기능은 스페이스바를 잠깐 누르고 있으면 활성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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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팅과 카메라의 연결고리


카메라는 1개다. 망원 렌즈를 쓰지 않는다면 문제 될 것 없는 부분이지만 아쉽긴 하다. 대신 렌즈와 센서 등 카메라의 특성은 아이폰X과 같다. 이전까지의 카메라보다 화각이 약간 넓어졌고, 조리개는 f/1.8이다. 특히 이번 아이폰에 쓰인 A12 바이오닉 프로세서가 워낙 카메라와 관련된 ISP(이미지 신호 처리)가 강해졌기 때문에 화질도 좋다. 특히 셔터를 한 번 누르면 4장의 사진을 찍어 하나로 합치면서 색과 밝기 표현이 크게 좋아졌다. 보통 이렇게 여러 장을 찍어서 합치면 이미지를 처리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A12 프로세서는 처리 과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셔터는 누르는 대로 계속해서 지연 없이 사진을 담아낸다.
망원렌즈는 없지만 뒷 배경을 뿌옇게 해주는 인물사진 모드는 있다. 다만 카메라 1개로 처리하기 때문에 그 방법이 조금 다르다. 이 역시 프로세서가 맡는다. 인물사진 모드를 켜면 A12 바이오닉 프로세서는 이미지 속에서 사람을 찾아내 이미지에서 분리해 낸다. 그리고 나머지 배경을 흐리게 처리한다. 머신러닝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망원렌즈를 중심으로 사진을 찍었기 때문에 왜곡이 거의 없었는데, 아이폰 XR로 찍은 인물 사진의 왜곡은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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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XR의 카메라는 1개지만 뒷 배경이 흐릿해지는 인물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속도나 정확도는 제법이다. 무엇보다 카메라 1개로 찍고 이미지를 분석해서 실시간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피사체 거리에 영향을 덜 받는다. 앞 뒤로 움직여도 일반 사진과 거의 똑같이 초점을 맞춰주고, 찍는 속도도 빠르다. 인물 사진을 찍을 때 결과물이 묘하게 걱정되던 초점거리, 속도, 노이즈 등의 스트레스가 전혀 없다. 정확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긴 하는데 테스트하면서 촬영했던 결과물들은 모두 만족스러웠다.
다만 무대조명 효과는 빠졌고, 초점이 잡힌 피사체를 중심으로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이미지를 따내는 방식이기 때문에 사람 외에 꽃이나 음식 등 다른 피사체는 심도를 표현할 수 없다. 이 역시 머신러닝으로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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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 제품으로서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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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XR에 대해 가장 묘한 평가는 ‘비싼 보급형 제품’인 것 같다. 마치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아이폰XR은 보급형, 혹은 저가형으로 불릴 만한 제품은 아니다. 오히려 주력 제품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 ‘아이폰5C’와 비교되기도 한다. ‘아이폰5S’와 함께 아이폰 5C가 나온 것은 아이폰5의 판매를 이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이를 대신하면서 아이폰5S와 간섭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아이폰XR과 아이폰XS의 관계는 전혀 다르다.
특히 애플이 이번 세대에 집중하는 것이 A12 바이오닉 프로세서를 중심으로 한 인공지능과 증강현실이고, 이 경험은 모델을 가리지 않는다. 아쉬운 점들은 분명히 있다. 가장 섭섭한 것은 스피커다. 아이폰XS의 스테레오 스피커는 굉장히 인상적이다. 소리가 더 커졌고, 작게 들어도 더 또렷하게 들린다. 적어도 음질 때문에 게임이나 넷플릭스에서 이어폰을 꺼내들 필요가 없을 정도다. 아이폰XR의 스피커도 좋아졌지만 수화기 쪽의 스피커가 빠졌다. 어떤 점에서는 명확히 차별을 두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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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뭔가를 판단할 필요는 없다. 물론 아이폰XR은 아이폰XS보다 싸다. 그리고 거의 모든 면에서 아이폰XS가 더 좋다. 3D 터치가 빠지고 카메라가 1개인 것을 보면 보급형이라는 해석이 틀린 것도 아니다. 하지만 플래그십 모델에 비해 치명적인 부분을 양보해야 하는 제품은 아니다. 오히려 일부 특징들은 스마트폰을 쓰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아이폰XR과 아이폰XS를 두고 치열하게 고민하게 만든다. 같은 자동차를 두고 옵션을 고르는 것과 비슷하달까. 36만원 정도 가격이 차이나는 두 제품이 고민스럽다는 것은 상품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지향점이나 필요한 요소의 차이에 따라 고를 수 있는 옵션으로 바라보는 편이 낫겠다. 개인적으로 이번 아이폰 중에서 가장 상품성이 높은 것은 아이폰XR 64GB 모델이라고 본다.
이미 몇몇 외신의 평가처럼 ‘보급형 제품이라고 부르기에는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게 아이폰XR이다. 플래그십을 중요시하는 시장의 분위기가 출시 전부터 평가에 한 꺼풀을 덮고 있지만 아이폰XR을 고르는 것에 눈치 볼 필요는 없다. 그 어느 때보다 고르기 어려운 게 올해 아이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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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최호섭

블로터
디지털 세상을 읽는 눈 
Updated  201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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