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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에서 온 파란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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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에서 온 파란 병

블루보틀 이야기

한 잔을 마시기 위해 2시간 줄 서기를 마다하지 않는 커피가 있다. 사람들은 이 브랜드 로고가 그려진 간판 앞에서 앞 다투어 인증 사진을 찍으며, 관련 MD 상품을 다량 구매한다. 42시간이 지난 원두로는 커피를 만들지 않는다는 고집스러운 철학으로 2002년 오클랜드에 문을 연 파란 병, 블루보틀Blue Bottl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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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높은 가구, 잡다한 집기 없이 오직 커피에 집중하게 만드는 미니멀한 매장과 직관적이고 명료한 브랜딩으로 ‘커피계의 애플’이라는 별칭까지 얻은 블루보틀은 제3의 물결을 이끈한 미국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의 선두 주자다.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제임스 프리먼James Freeman이 16m²의 작은 공간에서 원두를 볶아 팔기 시작하던 당시 하루 매출이 70달러에 불과했으나 현재(2016년 기준)는 연매출 1064억 원, 기업 가치는 7000억 원에 이른다. 소규모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의 성패는 자신들이 공들여 만든 이 까만 액체의 본질을 어떻게 의미 있게 전달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블루보틀은 그들만의 디자인과 스타일로 완벽한 커피 경험을 위한 관계 맺음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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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보틀’이라는 이름은 1686년 중부 유럽에서는 최초로 오스트리아 빈에 오픈한 카페 이름인 블루보틀 하우스에서 따왔다. 그곳의 미니멀하고 정적인 분위기는 블루보틀의 브랜딩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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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병을 그대로 형상화한 BI는 다른 설명이나 중의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보는 순간 그것이 블루보틀임을 인지한다. 손으로 그린 듯한 파란색 병은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이 오클랜드의 작은 창고에서 생두를 손수 볶아 수레에 담아 마켓에 가져가 팔던 아날로그 방식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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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스페셜티 커피의 핵심은 ‘이야기’다. 명확한 출처와 생산 방식, 커피콩이 까만 액체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전달하는 것이 이 브랜드의 중요한 역할이자 다른 브랜드와 차별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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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에 대한 설명서, 바리스타와의 대화, 커피를 잘 모르는 사람도 내가 마시는 커피가 무엇이고 또 어떻게 추출되는지 관심을 갖도록 하는 MD 개발까지, 그 목적은 하나다. ‘내가 마시는 커피’에 대한 고객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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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오클랜드 매장은 벽돌과 우드는 블루보틀의 아날로그적인 이미지를 전달한다. 카페 바와 고객 공간을 가로막는 요소가 없고, 고객이 오가는 공간을 널찍하게 마련했다.
블루보틀의 BI 전략은 커피를 경험하는 장소인 매장의 공간 디자인과도 연결된다. 매장은 연극 무대를 위한 공간을 떠올리면 쉽다. 바리스타와 고객, 고객과 커피만 오롯이 무대 위에 올리고 다른 요소는 최대한 덜어내는 것이다. 무대 조명처럼 사용하는 빛은 공간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빛이 만들어내는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사용한다. 고객은 마치 의식과 같은 바리스타의 커피 추출 장면을 다른 방해 요소 없이 온전히 감상하고, 내가 마시게 될 커피의 제조 과정을 여과 없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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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로스 펠리즈 매장은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는 르 코르뷔지에의 말에서 모티브를 얻어 ‘매장은 커피를 위한 곳’으로 만들고자 했다. 모더니즘 형식의 건물에 맞게 외관 역시 심플하게 구성했다. 화이트와 그레이 컬러가 블루보틀의 BI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블루보틀 CEO 브라이언 미한Bryan Meehan은 매장에 무선 인터넷을 제공하지 않는 방침도, 의자의 위치에 대해서도 ‘절제된 꽃꽂이를 하듯’ 디자인한 것이라고 표현한다. 특히 블루보틀은 매장 입지를 정할 때 유동 인구나 타깃층과 같은 조사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최근 문을 연 조지타운 매장이나 헨리 하우스는 단순히 입지가 좋아서가 아니라 블루보틀의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이 브라이언 미한의 얘기다. 조지타운 매장의 경우, 지역 주민의 풍부한 여행 경험과 문화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입지 선정의 중요한 요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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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아오야마 매장은 커피 바 맞은편에는 카페 바와 비슷한 높이의 의자와 테이블을 배치했다. 앉아서도 편안한 시선으로 바리스타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블루보틀은 지금 동전의 양면을 모두 갖고 있다. 가장 스타일리시한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로 포지셔닝한 성공 이면에 본질인 커피 맛보다 디자인이나 매장이 유행처럼 주목받는 게 아닌가 하는 평가다. 지난해 10월, 네슬레에 인수된 블루보틀에 대한 부정적 시선 또한 자칫 블루보틀의 본질이 변하지 않을까 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네슬레는 4억 2500만 달러(약 4800억 원)에 블루보틀의 지분 68%를 인수했다. 하지만 블루보틀의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은 이 결정에 대해 신선한 커피를 제공하겠다는 블루보틀의 철학을 확장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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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내리는 과정 또한 블루보틀의 중요한 서비스 디자인이다.
볶은 지 48시간이 넘은 원두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기존 정책은 이제 블렌드 원두는 4일, 싱글 오리진 원두는 일주일간 사용하는 정책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는 타협이 아니라 원두 맛을 오래 유지하는 노하우를 축적한 결과이며, 여기에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스페셜티 커피와 문화를 즐기기 바란다는 전제가 뒷받침된다. 미국의 푸드 섹션 기고가 팀 카먼Tim Carmen은 최근 문을 연 조지타운 매장에 대해 “블루보틀은 스타일리시한 매장 안에 본질을 잘 감춰두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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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와 원활한 대화를 위해 카페바의 높이는 허리 아래로 낮추었다.
블루보틀이 어떤 방식으로 대중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서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다는 얘기다. 커피를 아는 마니아의 음료가 아니라, 모두가 품질 좋은 원두를 사용한 최상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환경과 문화를 형성하는 일, 이것이 블루보틀뿐 아니라 제3의 물결을 주도한 브랜드들이 앞으로 더욱 주목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물론 ‘최상의 커피 맛’이라는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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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에디터 최선아 디자이너 윤성민
오상희
출처 월간디자인 2월호

월간 디자인
40년째 디자인을 기록 중 
Updated  2018-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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