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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라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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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CL과 떠난 도야마 여행
“거기 추워? 패딩 입어야 되는 거 아니야?”
“안 추워. 하나도 안 춥대, 진짜로.”

그 말만 믿고 구멍이 숭숭 난 니트에 면바지를 입었다. 동생은 봄기운 물씬 나는 코트에, 스카프까지 둘렀다. 다테야마역, 다테야마 쿠로베 알펜루트 매표소 앞에는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대열에 선 이들 모두 등산복 차림이었다.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뒤돌아보니 엄마는 어느새 가방에서 꺼낸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안 춥다며….”
“얘, 그래도 산 꼭대기는 좀 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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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가 여기였다…. 51mm, F/5.5, 1/500초, ISO100
두 달 전 일본 혼슈 동해 연안에 있는 도야마에 다녀왔다. 도야마는 풍성할 부(富), 뫼 산(山)자를 쓴다. 이름 그대로 산이 많은 지역으로, 일명 ‘북알프스’라 불리는 다테야마산(해발 3015미터)이 이곳에 위치해 있다. 다테야마 쿠로베 알펜루트는 북알프스 산맥을 관통하는 관광길이다. 이곳에 가면 5월에도 눈이 소복이 쌓인 산을 구경할 수 있다. 당시 ‘라이카CL’을 쓰고 있었는데 이 물건을 바다 건너까지 가져갈까, 말까 고민하다 들고 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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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CL은 크롭 바디 미러리스 ‘라이카 TL’과 풀프레임 미러리스 ‘라이카 SL’ 라인업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라이카TL은 200만원 중후반대, 라이카SL은 출시 당시 바디 가격만 1000만원을 호가했다. 라이카CL은 약 330만원 정도다. 렌즈를 들이기 시작하면 눈 깜짝할 새 불어날 금액이다.
2424만화소 APS-C CMOS 이미지 센서가 탑재돼 있고 ISO 100~5만, 최대 10fps 연속촬영, 셔터 스피드 최대 1/8000초(기계식), 1/2만5000초(전자식)를 지원한다. 4K 30프레임 동영상 촬영도 가능하다.
가지고 있던 렌즈는 라이카 VARIO-ELMAR-TL 18-56 mm f/3.5-5.6 ASPH, Summicron-TL 23 f/2 ASPH 2종이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줌렌즈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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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초점만 잘 맞으면 그럴 듯하다. 카메라가 흔들리면 사진의 초점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삼각대라도 있다면 든든하겠지만, 여행에서 주객이 전도되면 곤란하다.
라이카CL은 순간을 담는 ‘도구’의 역할에 충실한 카메라다. 배터리 포함 402g으로 가볍고, 그립감도 뛰어난 데다가 아무렇게나 찍어도 필요한 장면을 담아낸다. 케이블카, 버스, 탄광열차, 신칸센까지 타야 하는 이번 여행에 라이카를 들고 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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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다테야마행 열차를 타러 갔다. 첫차는 놓치고, 두 번째 열차를 탔다. 40mm, F/5.1, 1/160초, ISO100
일정상 해발 2450미터 ‘무로도’만 찍고 내려오기로 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또 한참 기다렸다 버스를 탔다. 어찌 됐든 타기만 하면 눈 덮인 산 꼭대기까지 데려다 준다고 하니 대기시간이 그리 길지 않게 느껴졌다. 트롤리 버스에 맨 마지막으로 타는 바람에 운 좋게 맨 앞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무로도행 트롤리 버스 스피커에서는 잔잔한 클래식 선율이 흘러나왔다. 금세 정상에 도착했다. 사방이 눈으로 뒤덮여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자연 풍광을 보고 탄성을 내지른 건 난생 처음이었다. 기온은 영상 10도라는데, 바람이 문제였다. 혹시나 해서 챙겼던 스타킹을 두 개나 껴입고 아버지 등산 가방에 있던 바람막이를 입었더니 버틸 만했다. 기껏 멋을 부렸던 동생은 봄 코트에 가죽 장갑을 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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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도 가는 길. 56mm, F/5.6, 1/160초, ISO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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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mm, F/5.4, 1/640초, ISO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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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mm, F/5, 1/640초, ISO100
라이카CL는 236만 화소 고해상도 아이레스 전자식 뷰파인더(EVF) 하나로 사진 찍는 맛을 선사한다. 경조흑백 모드로 촬영 시 뷰파인더에 눈을 갖다 대면, 1920년대 만들어진 흑백 무성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반응 속도도 빨라 지연시간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전직 미러리스 애호가라 지금까지는 LCD 디스플레이만 보고 사진을 찍는 데 익숙했지만, 라이카CL를 통해 뷰파인더를 아는 몸이 되었다.
처음에는 ‘나도 라이카에 환상을 가지고 있나?’하고 스스로를 의심했다. 상품은 대개 비싸면 비싼 값을 한다. 그 값에 ‘감성’ 프리미엄이 더해지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자신의 직관이나 감보다는 ‘카더라’를 믿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감성’ 같은 단어가 붙으면 눈부터 가늘게 뜨고 보는 편인데도 EVF 같은 요소가 하나하나 더해지니 만족스럽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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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모양으로 툭 튀어나온 뷰파인더.
라이카CL 담당자는 일본의 카메라 전문매체 <디지카메 워치>에 “파인더가 좋다고 느꼈다면 이 카메라가 가진 목표 하나는 달성했다고 본다”라며 “안경을 쓰고 있어도 파인더의 네 귀퉁이까지 보이게 설계했다”고 말했다.
인터뷰에는 APS-C 타입 라이카X을 출시하던 2009년 당시에는 전자식 뷰파인더(EVF) 기술이 여물지 않았었다는 고백이 담겨 있었다. 이후 라이카Q와 라이카SL에 고품질 EVF를 내장했고 가장 높은 수준이었던 라이카SL의 EVF를 간결하게 정리한 것이 라이카 CL의 EVF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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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CL 윗면에는 두 개의 다이얼이 있는데, 왼쪽 다이얼로는 셔터 속도, 조리개, 노출 등 촬영모드를 조정할 수 있다. 오른쪽 다이얼의 버튼을 누르면 ISO가 변경된다. 다이얼의 기능을 설정에서 바꿀 수도 있다. 다이얼 사이에 위치한 LCD 화면은 뷰파인더를 보지 않고도 촬영할 수 있도록 조리개 및 노출 값 등이 표시된다. 라이카의 묘미는 순간을 낚아채는 ‘스냅사진’에 있으니, 이유 있는 설계다.
라이카는 셔터음이 조용한 편이어서 흔히 ‘셔터음이 정숙하다’는 표현을 쓴다. 사람에 따라 정숙함이 다소 맥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다이얼을 돌릴 때는 작동이 지나치게 매끄러워 ‘손맛’을 느낄 수 없는데 이 점은 상당히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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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mm, F/4.8, 1/80초, ISO100
무로도에서는 바람이 매섭게 불어 뺨과 손이 얼얼했다. 사진에 정성을 쏟을 여유가 없었다. 다음 날은 우나즈키 온천에 묵으면서 구로베 협곡을 구경할 수 있는 도롯코 열차를 탔다. 알펜루트 명소 구로베 댐을 건설하던 당시 공사 인부를 실어 나르던 열차인데 구로베 댐이 완공된 70년대 이후 관광열차로 바뀌어 운영되고 있다. 이날도 일정이 빠듯해 만년설 하나 구경하고는 열차 시간에 맞춰 뛰어야 했다. 초점을 맞추려고는 했지만 거의 대부분 움직이는 상황이었다.
여행에서 찍었던 사진을 크롭해 원본과 비교해봤다. 같은 사진, 다른 느낌. 초점이 잘 안 맞은 상황이지만 결과물이 나쁘지 않다. 마지막 사진은 초점을 공들여 잡았더니 다른 사진에 비해 선예도에서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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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도 있다. 라이카CL은 초점 모드를 자동에서 수동, 또는 수동에서 자동으로 전환하고 싶으면 메뉴로 들어가서 설정을 바꿔야 한다. 라이카CL 전용렌즈인 TL렌즈군은 초점 전환 스위치도 없다. 사진 한 장 찍고 메뉴를 눌러 AF모드를 다시 설정하고 또 한 장 찍고···. 이 밖에 다른 세부사항도 설정에 들어가서 변경해야 한다. 그때그때 알맞은 설정 값을 찾아 섬세하게 촬영하는 방식을 선호한다면 다소 불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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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18km 정도로 달리는 토롯코 열차에서. 37mm, F/5, 1/250초, ISO100
배터리 용량은 1200mAh로 220장 정도 찍을 수 있다. 2시간에서 2시간 반을 풀타임으로 쓰면 닳는다. 아마 전력 소비가 심한 EVF를 열심히 썼기 때문일 게다. 그렇다고 EVF를 안 쓰자니 영 재미가 없다. 가능하다면 여분의 배터리를 필수로 구비해둘 것을 권장한다.
내장 와이파이 모듈이 탑재돼 있어 촬영한 이미지를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에 무선으로 전송할 수 있다. 라이카CL 전용 앱에서 카메라를 원격 조작 및 촬영할 수도 있다. iOS 및 안드로이드 모두 이용 가능하다. 나는 앱을 따로 내려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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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L, SL 렌즈군은 마운트 없이 호환 가능하고 M마운트를 장착하면 M렌즈군도 쓸 수 있다. 이 때문에 라이카CL은 ‘작은 라이카M(A Little M)’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M시리즈는 바디 값이 천만원에 육박하고 렌즈 가격도 상당하다. 바디에 렌즈까지 구입하려면 그 비용이 거의 차 한 대 값인 셈이다.
그래서 라이카X 유저인 회사 동료는 라이카CL이 나온 이유가 “CL을 쓰다 렌즈를 하나 둘 구매하게 되고, 결국 단점을 느낀 다음에 라이카M을 사게 하려는 전략”이라 분석하고 “라이카M의 데모 버전 또는 체험판”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체험판 프로그램을 쓰다 더 큰 만족을 위해 유료 버전을 쓰게 되듯, 라이카에 입문해 라이카M으로 향하게끔 하는 유인책이 라이카CL이라는 얘기다.
느낌이라는 건 주관적이고 때로는 불확실하게 들리지만 느낌의 총합이 곧 경험이라. 뭐가 됐든 자꾸 찍고 싶게 만드는 카메라였으니 그 감상만으로도 큰 점수를 주고 싶다.
라이카에 대한 로망이 있고, 라이카M은 아직 부담이 되고, 렌즈교환식 미러리스를 선호한다면 추천. 꼭 라이카가 아니어도 되고, 그 값에 더 좋은 타사 제품군 조합이 착착 그려지는 사용자라면 원하는 조합을 사는 편이 낫다.
장점
렌즈교환 가능

단점
이 값이면 가만 있어 보자, 그 렌즈가….

추천 대상
라이카에 대한 로망이 있고, 라이카M은 아직 부담이 되고, 렌즈교환식 미러리스를 선호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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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인경

블로터
디지털 세상을 읽는 눈 
Updated  2018-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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