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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프트 푸드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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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프트 푸드를 찾아서

메이커가 만든 맛

공들인 한끼란 이런 것이다. 셰프의 ‘레시피’가 아닌 메이커의 ‘철학과 신념’으로 만든 음식,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투명하게 실필 수 있는 음식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메이커의 크래프트 푸드 열풍이 불고 있다. 메이커는 농부와 함께 원재료를 고민하고, 셰프처럼 맛을 연구하며, 디자이너와 함께 창의적 패키지를 만든다. 재료가 지닌 본능적인 맛과 감춰진 맛을 식탁에 차리는 그들. 미국, 영국, 프랑스, 한국에서 이름난 커피, 초콜릿, 진 메이커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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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나이트 인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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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인 하우스 대표 김병건 바텐더가 건넨 칵테일에는 벚꽃이 피어 있었다. 고운 빛깔과 싱그러운 향기가 다시 한 모금을 부르는 칵테일. 파리 시내에서 유일한 양조장인 디스틸러리 드 파리의 진 배치1을 베이스로 만든 것이었다. “처음 디스틸러리 드 파리의 진을 열었을 때는 향수병을 갓 개봉한 것 같았죠. 영국 런던 드라이진과는 전혀 다른, 아찔한 향기가 풍겼어요. 그 자체로도 훌륭한데, 어떻게 칵테일로 맛을 승화시킬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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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틸러리 드 파리 대표 니콜라 쥘
바텐더가 해준 이야기를 디스틸러리 드 파리의 대표 니골라 쥘Nicolas Julhes에게 전하자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는 듯 미소를 띠었다. 그는 조향사처럼 진을 만든다고 했다. “저는 아로마 속에 슬픔, 기쁨, 환희 등 여러 감정을 담고 싶어요. 보통의 진 메이커처럼 재료에서 출발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여러 이미지를 떠올리고 종이에 구조와 형태를 드로잉한 후 이를 실체화할 수 있는 재료를 찾는 방법으로 술을 제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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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느낀 감정대로 꽃, 허브 등 여러재료를 증류기에 넣어 아로마를 창조한다. 처음 얻은 알코올 75%의 고도수를 두 달 동안 천천히 물을 첨가해 43%까지 낮추는 과정도 중요하다. 아로마를 끌어올리고 텍스처를 완성하는, 섬세한 결을 만드는 순간이다. 본인이 만든 술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뭘까? 그가 고른 것은 진 배치1으로 만든 네그로니와 드라이 마티니 칵테일. 안주는 생선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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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순간을 음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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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에 어울리는 케냐산 원두를 택하겠어요. 가볍게 9분 정도 로스팅을 해요. 제가 좋아하는 산미가 살아나는 적당한 시간이거든요. 이를 EK 43 그라인더로 갈아 필터에 18g을 넣고 2분 30초 동안 추출해 300ml 커피를 만들겠어요. 꽃향기와 강한 산미를 지닌 케냐산 원두를 제대로 즐기려면 필터 커피가 좋죠.” 영국 런던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누드 에스프레소 로스터리 담당자 케인 스테튼Kane Statton에게 ‘오늘 마시고 싶은 커피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지자 돌아온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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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 에스프레소 로스터리 디렉터 케인 스태튼
2008년, 쇼어디치에서 뉴질랜드 청년 두 명이 시작한 커피 브랜드 누드 에스프레소는 정확한 온도, 시간, 압력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정교한 커피를 추구한다. 80% 이상 에너지를 절감하는 친환경 로스터리 머신 로링 스마트 로스트Loring Smart Roast를 갖춘 로스터리 매장에는 화학 실험 연구소를 방불케 했다. “맛있는 에스프레소 한 잔 뽑아내는 일은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습니다. 커피는 유기체처럼 살아 있는 맛을 지니고 있어 손님들에게 매 순간 최상의 맛을 전하려면 상황에 맞춰 정확한 숫자를 대입해야 하죠. 그뿐 아니라 원두도 중요한데, 저희는 생산자와 직거래해 매번 일정한 퀄리티를 유지합니다. 바리스타뿐 아니라 모든 스태프가 커피를 만드는 전 과정에 대해 트레이닝을 받습니다. 그래야 정확한 숫자가 만드는 황홀한 맛을 이해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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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 에스프레소의 시그너처 메뉴는 이스트 에스프레소 블렌드다. 시즌마다 맛과 향이 다른데, 매번 다른 종류의 원두를 섞어 만들기 때문이다. 이 제품은 다른 커피 전문점에서도 널리 쓰인다. “런던 내 크래프트 푸드 열풍은 주로 이민자들이 주도하고 있어요. 다양한 문화가 만드는 만화경 같은 맛의 풍경이 바로 크래프트 푸드죠. 누드 에스프레소 또한 일관된 맛이 아닌 계절에 따라, 상황에 따라, 원두에 따라 매번 최고의 맛을 빚어내고 있어요.”그의 말을 듣고 있으니 커피 한 잔이 간절해졌다. 스페셜티 커피의 성지로 꼽히는 누드 에스프레소 매장에는 그렇게 마실 때마다 ‘발견하는’ 맛을 구하는 커피 순례자들이 빼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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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은 혁신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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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한 초콜릿 브랜드 쵸TCHO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스탠퍼드 대학교 김소형 교수를 통해서였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푸드와 테크놀로지를 결합한 기발한 시도가 벌어지고 있는데(포도 없는 와인이나 실험실 속 쇠고기 같은 것), 초콜릿 업계에서는 빈투바 운동(카카오 빈에서초콜릿 바까지 메이커가 모든 과정을 관리하는 것)을 주도하는 쵸 브랜드의 티머시 차일즈Timothy Childs가 대표적 혁명가로 꼽힌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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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를 설립한 티머시 차일즈
“놀랍게도 농부들은 재배하고 있는 카카오 원두로 만든 초콜릿의 맛을 모르더군요. 농장 내 ‘초 플레이버 랩’을 만들고 농부와 세계 각국의 카카오 원두를 모아 연구하기 시작했죠. 초콜릿 또한 와인처럼 테루아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고, 카카오 함량과 지역을 표기하는 다른 브랜드와 달리 ‘쵸 플레이버 휠’이란 이름 아래 여섯 가지 맛의 카테고리(citrus, fruity, earthy, nutty, chocolatey)를 정해 ‘본능의 맛’을 내세우기로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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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의 제품을 보면 돌직구 화법처럼 맛이 떠오른다. 패키지의 직관적 디자인도 한몫한다. “이미지는 물론 촉감도 고려했어요. 형태 또한 직사각형에서 탈피해 정사각형으로 디자인했죠. 초기 애플 매킨토시 데스크톱을 디자인한 에릭 스피커만의 작품입니다.” 패키지 디자인은 iF디자인 어워드, 칸 디자인 라이언즈를 비롯해 수많은 디자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트리플 베리, 민트칩 젤라토, 모카치노(세계적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블루 보틀과 협업한 제품)등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맛이 난다. 일절 첨가물 없이 원두 본연의 맛이다. 입에 넣으면 눈송이처럼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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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초콜릿을 맛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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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싱글 오리진 빈투바 초콜릿을 알리고 있는 성수동 피초코 대표 댄과 존 형제. 베네수엘라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이민 온 두 형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베네수엘라산 커버처(Couverture, 카카오 원두에서 나온 카카오 버터를 최소 30% 함유한 리얼 초콜릿)로 만든 초콜릿과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만든 핫 초콜릿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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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오른쪽)과 존 형제
댄은 만나자마자 뜨거운 핫 초콜릿과 함께 디자인이 세련된 노트 한 권을 건넸다. 노트 표지에는 “정말이지, 당신은 더 좋은 초콜릿을 먹어야 합니다(Seriously, you deserve better chocolate)”라는 문구가 또렷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초콜릿 만드는 모든 과정과 테루아에 따른 차이, 초콜릿을 맛보는 방법 등 메이커의 내밀한 이야기가 진하게 녹아 있었다. 한국말이 서툴다고 했지만 그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지금까지 알고 있는 맛은 모두 잊으시라’. 댄의 설명대로라면 지금까지 우리가 먹은 초콜릿은 대부분 가공 초콜릿이다. 카카오 버터를 30% 이상 함유한 진짜 초콜릿의 맛과 질감은 완전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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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한번 먹어보세요. 베네수엘라의 수르 델 라고Sur Del Lago 지역 카카오로 만든 초콜릿은 견과류의 풍미와 크리미한 맛이 강하지만 카리브 해안가의 리오 카리베Rio Caribe 지역 것은 전혀 다른 맛이 나죠? 피초코가 소개하는 베네수엘라산 커버처 브랜드 엘 라이El Rey는 이런 테루아에 따른 차이를 보여주는 싱글 오리진 초콜릿 브랜드예요. 저희는 이를 이용해 다크·밀크 초콜릿, 화이트 + 커피, 밀크 + 얼그레이 등 플레이버 라인 등을 소개하고 있죠.” 그가 건넨 초콜릿 중 어떤 것은 소금처럼 짜고 달았고, 어떤 것은 고추처럼 맵고 쌉쌀했다. 또 어떤 것은 봄비 내린 땅 냄새가 났다. 그렇게 입안에서 초콜릿이 녹을 때마다 초콜릿에 대한 통념적인 맛도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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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에디터 최선아
계안나
출처 행복이가득한집 5월호

행복이가득한집
생활을 디자인할 때 더 커지는 행복 
Updated  2018-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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