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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오래된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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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오래된 가게

오래된 것의 가치

예술인들의 사랑방이던 다방의 커피, 헛헛한 속을 달래주던 김밥 한 줄, 특별한 날 큰마음 먹고 산 버터크림 케이크···. 얼마 전 서울시가 3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어 더욱 가치 있는 ‘오래 가게’ 서른아홉 곳을 선정했다. 그중 저마다의 맛과 이야기를 간직하고 오랜 세월을 버텨준, 그래서 더욱 고마운 음식점 일곱 곳을 다녀왔다. 그대여, 부디 오래오래 우리 곁에 있어주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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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맛김밥’의 주인 정서윤 씨는 김밥 하면 진한 참기름 냄새부터 떠오른다. 생활력이 강하던 그의 어머니는 1950년대 중반, 서촌 통인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시작했다. 1976년도에 ‘할머니김밥’집을 열었고, 이를 정서윤 씨가 물려받아 손맛김밥으로 이어졌으니 그 세월만 40년이 넘는다.
“어머니의 손맛은 정말 기가 막혔죠! 한데 김밥은 잘 말지 못했어요. 제가 하루에 김밥 4백 줄을 말면 어머니는 고작 1백50줄을 말았어요. 구운 김 위에 밥을 한 손 가득 얹어 꼼꼼하게 편 뒤 달걀 한 줄, 시금치 두 줄기, 맛살 한 줄, 어묵 한 줄, 우엉 네 줄기를 올리고 꾹꾹 눌러 정성스럽게 말았지요. 그러니 손이 느릴 수밖에요. 손 빠른 제가 김밥을 말다 보니 온몸에 참기름 냄새가 배어 대학 시절 놀림도 많이 받았죠.”
달걀을 제외하고 시금치, 어묵, 우엉, 맛살은 모두 참기름과 참깨로 간한 뒤 달달 볶아 사용한다. 여름에는 시금치 대신 오이를 넣는다.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대로 오이를 잘게 썰어 맷돌로 하루 종일 눌러놓는데, 식감이 오독오독해지는 비법이라고. 재료를 넣고 후다닥 김밥을 마는 그의 손놀림을 보니 입안에 군침이 돈다.

손맛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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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오늘 바로 구운 과자 없어요?”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단골손님의 외침에 김영남 씨가 뜨거운 철판에서 갓 구운 파래전병을 건넨다. ‘내자땅콩’은 그의 아버지가 스무 살 때 신림동에서 시작한 과자 전문점으로 1976년 현재 자리 내자동으로 옮겼다. 쇼핑몰을 운영하다 아버지의 가게를 이어받은 김영남 씨는 멀리서 부러 찾아오는 단골손님을 위해 웬만하면 1년 3백65일 문을 연단다.
뜨거운 불판 앞에 앉아 수작업으로 과자를 굽다 보니 하루 생산량은 기껏해야 1백20봉지가 전부다. 대표 메뉴는 땅콩과 생강, 파래를 각각 넣어 만든 전병. 하루에 한 가지만 굽기 때문에 제 날짜에 맞춰 오는 손님도 있다고.
“과자집마다 사용하는 반죽과 속 재료가 달라 맛 차이도 확실합니다. 저희 집만의 비법은 밀가루에 땅콩가루와 깻가루를 넣고 만든 반죽을 하루 정도 숙성한 뒤 사용하는 거예요. 반죽이 충분히 부풀어야 전병 식감이 더욱 바삭해지지요. 땅콩전병은 땅콩을 통째로 넣고, 파래전병도 파래를 듬뿍 넣어서 구워요.”
생강전병도 남다르다. 구운 전병 표면에 생강 설탕물을 발라 만드는 일반 가게와 달리 이곳은 반죽 속에 생강을 갈아 넣어 알싸한 풍미가 일품이다.

내자땅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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턴테이블 위 LP 음반에서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음악이 잔잔하게 흐르고, 달콤한 크림이 잔뜩 올라간 비엔나커피와 푸딩처럼 말랑말랑한 치즈 케이크가 낡은 테이블 위에 놓인다. 1956년 대학로에 문을 연 ‘학림다방’은 작년에 6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사람들의 흔적과 시간의 켜가 쌓인 이곳은 민주화를 외치던 청춘들의 아지트이자 동시대 예술인들의 아늑한 쉼터였다. 이충렬 씨는 학림다방의 네 번째 주인으로 1987년 이곳을 인수해 30년 동안 운영해왔다.
“얼마 전 거금을 들여 소파 커버를 바꿨어요. 방석이 푹 꺼지고 천이 닳아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30년 전 이 소파를 제작한 사람을 찾아가 소파 커버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더니, 그 아들이 가지고 왔더군요. 그래서 제가 ‘40년 후엔 자네가 만들어 오게나. 그땐 이곳이 1백 년이 되지 않겠나.’라고 했어요. 그렇게 역사와 인연은 이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학림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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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희네 반찬가게 주인장 추귀자 할머니는 첫째 딸의 이름을 걸고 광장시장에서 반찬 가게를 열어 손맛 하나만 믿고 54년 동안 반찬을 팔았다. 힘에 부칠 무렵 요리 솜씨가 좋은 사위가 들어왔으니 바로 둘째 딸 김미진 씨와 결혼해 현재 반찬 가게를 도맡고 있는 유병희 씨다.
“내년이 딱 10년째입니다. 장모님의 손맛을 재현하려 많이 노력했어요. 처음에는 섭섭하기도 했지요. 오랜 단골손님이 저는 아랑곳 않고 장모님만 찾았거든요. 이제는 저를 믿고 찾아오는 손님도 늘어 뿌듯합니다.” 순희네 반찬 가게에는 53년이나 된 단골손님도 있고, 마늘장아찌와 명란을 사러 일본에서 부러 찾아오는 손님도 많다.
유병희 씨는 매일 스무 가지가 넘는 반찬을 만드는데, 그중 간장게장과 양념게장, 가자미식해가 가장 인기 있다. “알이 꽉 찬 꽃게만 골라 깨끗하게 손질해서 사용합니다. 양조간장을 소주로 희석해 팔팔 끓여 식혀요. 여기에 마늘과 생강, 꽃게를 넣고 숙성시키지요. 생강은 오래 두면 쓴맛이 강해져 하루 반나절이 지나면 건져냅니다.”

순희네반찬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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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개업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태극당’. 이곳에서 일하는 장인들의 근속 기간은 보통 40년이 넘는다. 얇게 구운 과자 피에 고소한 우유 아이스크림을 넣은 모나카, 색감이 화려한 버터크림 케이크, 아삭한 양배추가 가득 든 사라다빵은 70년이 넘도록 한결같은 맛을 유지한다.
작년 3월 리뉴얼해 오픈한 태극당은 70년 역사와 현대적 감각을 균형 있게 조화시켜 젊은 층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이를 가능케 한 이는 아버지 신광열 대표를 이어 태극당을 이끄는 젊은 피, 신경철 전무다.
“태극당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이야기와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빵으로만 사람들과 소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봐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브랜딩을 강화하기로 결정했지요. 태극당이 쌓아온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BI를 재정비하고 태극당 1946체와 귀여운 캐릭터를 선보였어요.” 앞으로도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해 에코백, 티셔츠 등을 만들어 재미난 프로젝트를 이어나갈 생각이다. 매장에 설치한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라는 문구처럼.

태극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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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북촌 골목길에 고소한 냄새가 퍼져 나간다. 시장 한복판도 아닌 관광객으로 붐비는 골목길 속으로 스며드는 냄새가 반가워 따라가 보니 ‘대구참기름집’이라 쓰여 있는 간판이 보인다. 주인장 서정식 씨가 참깨를 볶아 기계에 넣자 연갈색을 띤 참기름이 초록색 병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가 참기름집 주인이 된 지도 올해로 42년째. 1975년 종로3가 동익동에 있던 참기름집을 장모님에게 물려받은 것이 시작이었다. 지하철 3호선 공사로 인해 참기름을 납품하던 갈빗집에 손님이 끊기자 생계가 막막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참기름집이 있던 자리에 새 건물이 들어서게 되어 15년 동안 정든 일터를 떠났다. 1990년 3월 북촌 골목의 지금 자리로 옮겨 근 30년을 견뎠다.
“지금은 국내산 참기름집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그새 가격도 많이 올랐어요. 한국산 참기름의 고소한 맛에 반해 찾아오는 일본 손님도 꽤 많지요. 참기름을 한 병도 못 파는 날도 더러 있어요. 돈 욕심 낼 나이도 지났고, 나름대로 제가 하는 일에 자부심도 있고요. 그러니 힘닿는 데까지 참기름집을 지켜야죠.”

대구참기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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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때부터 외증조할머니가 궁중 떡을 배워 떡집을 운영했으니 1백 년은 훌쩍 넘었죠. 부모님이 피땀 흘려 투자한 세월을 보면서 떡집을 지켜야겠다는 사명감이 들더군요.” 김승모 씨는 2012년부터 3대 주인인 어머니 이광순 씨를 도와 4대째 낙원떡집을 운영하고 있다. ‘양심껏 만드는 것, 빚져도 지킬 것은 지키자!’가 대대로 이어 내려온 가르침이다.
그는 본격적으로 가업을 이으면서 홈페이지와 패키지를 세련되게 바꿨지만, 떡만큼은 변함없이 최고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송편과 영양떡, 두텁떡 등 다양한 떡 중에서도 쑥인절미를 찾는 단골손님이 가장 많다고. “매년 제주도에 있는 쑥 농가와 계약을 맺어 1년 치 물량을 확보합니다. 이를 깨끗하게 세척한 뒤 급랭해 보관해 신선도를 유지하지요. 쑥인절미는 쌀가루와 생쑥, 소금 단 세 가지만 넣고 만들어 쑥 향이 아주 진하고 식감이 굉장히 쫄깃합니다. 가격도 여전히 한 개당 1천 원이에요.”

낙원떡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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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에디터 최선아 디자이너 윤성민
김혜민

행복이가득한집
생활을 디자인할 때 더 커지는 행복 
Updated  2017-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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