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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구닥다리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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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을까

돌아온 구닥다리 카메라

필카 앱 ‘구닥’을 써보니

요즘 필름카메라를 살까 고민 중이다. 언제적 필카냐고? 모르는 소리다.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는 디지털이 종말을 맞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삐삐 세대는 펜팔로 만나던 시절을 추억하고 스마트폰 세대는 문자 수 맞춰쓰던 피처폰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그렇다. 아날로그의 매력은 ‘아름다운 구속’에 있다. 용량은 작고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횟수도 정해져 있다. 손이 많이 가는 건 물론이고 기다림의 시간도 길다. 조작법에 서툴면 필름 절반은 날리게 되는데도 필름카메라는 필름카메라만의 매력이 있다.

그런데 스마트폰으로도 필름카메라의 느낌을 구현한 카메라 앱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셔터스피드, 조리개 등을 조작할 수 있는 일반 필름카메라는 아니고 추억 속 일회용 필름카메라의 느낌을 살렸다. 말은 필요 없다. 사진부터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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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자연, 지영
이 느낌에 취향을 저격당했다. 앱의 이름은 오래돼 낡은 구닥다리 카메라에서 따온 ‘구닥’이다. 직접 써보고 싶었지만 애플 앱스토어에만 출시된 앱이라 내려받을 수 없었다는 게 함정.
일단 소개하자면 하루 24컷짜리 한 롤만 찍을 수 있고, 다 찍고 나면 1시간이 지나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한 롤이 생긴다. 다 찍은 사진을 바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진을 보려면 프로세싱(현상 및 인화)을 해야 하는데 3일은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아래처럼 남은 시간이 표시되고 사용자는 가만히 기다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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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닥 사진봉투가 생각난다.
하필 3일인 이유는 옛날 사진관에서 통상적으로 “3일 뒤에 찾으러 오세요”라고 했기 때문에 이를 재현한 거라고. 뷰파인더도 손톱 크기 정도다. 실눈을 떠야 뭘 담고 있는지 보일까 말까 한다. 아날로그의 불편함을 열심히 구현한 ‘구닥’을 사용하고 있는 3명을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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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닥, 써보니 어때?

자연(피아니스트) / 재문(대학원생) / 지영(프리랜서 AD)

Q. 구닥 앱을 왜 쓰게 됐는지 궁금해.

자연 | 필카를 찍어보고 싶긴 했어. 근데 사진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나더라고. 이번에 청년작가들 뽑아서 완주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데, 그 풍경을 아날로그하게 담고 싶어졌어. 모처럼 일회용 카메라라도 사려던 중이었는데 그러다 구닥을 찾게 된 거야.

지영 | 필름카메라를 사고는 싶은데, 당장 사기는 어렵고. 얼마나 비슷하게 구현되나 궁금했어.

Q. 다들 필름카메라를 사기 어렵다고 하네. 왜 그럴까?

재문 | 필름카메라로 친구가 사진을 찍어주고 그랬는데, ‘내가 찍어도 이렇게 잘 나올까?’라는 걱정이 많았어. 워낙 ‘똥손’이라 사진을 찍으면 내가 본 장면과 찍은 사진과의 괴리 때문에 주눅이 들고 그랬거든.

지영 | 물리적인 귀찮음이 있지, 아무래도. 필름을 매번 사고, 카메라에 넣고, 갈고, 현상 맡기고. 뭐 그런 것들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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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은 얼마 전 제주에 다녀왔다.

Q. 나는 사진이 예뻐서 확 꽂혔는데, 써보니까 어땠어?

자연 | 뷰파인더가 작아서 찍을 때 감으로 찍어야 하는데, 난 마음에 들었어. 나는 나름대로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정말 답답하더라, 사진을 3일 후에 볼 수 있다는 게. 그렇지만 작은 뷰파인더로 어떻게 찍힐까 상상하면서 찍고, 찍은 뒤에도 롤이 새로 생기려면 기다려야 하거든. 그 모든 과정과 결과에 시간을 들여 기다리고 있는 게 좋았어.

재문 | 스마트폰을 쓰면서 ‘이게 더 잘 나온다’는 감상은 있었지만 예전 필카 사진과 비교할 일은 별로 없었거든. 그런데 앱으로 찍은 사진을 보니까 바로 알겠더라고. 구닥으로 찍은 사진도 필카 필터를 씌운 거지만 있잖아, 왜. 일회용 필카를 들고 수학여행 갔을 때 잘 찍어보려고 햇빛도 신경써서 찍은 사진이 오히려 빛 바랜 듯 찍히고 그랬던 게 기억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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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문은 사진에 소질이 없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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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새로운 취미, 구닥으로 사진 찍기. 맥주 세 캔이 인상적이다.

Q. 아날로그 감성을 다들 부르짖지만 그때 쓰던 기기를 그 성능 그대로 쓰는 건 이제 오히려 낯선 일이 된 것 같아. 하지만 그 시절의 익숙한 감성만큼은 복원하고 싶은 것 같네.

자연 | 나는 ‘빠르지 않은 것’에 대한 로망은 항상 있는 편이야. 아직도 연필을 기차 모양 연필깎이에 깎고 있거든. 연필이랑 지우개를 좋아해. 빨간 돼지저금통도 아직 쓰고 있어. 그래서 구닥이 아날로그의 느낌을 지금 시대에 맞게 구현한 것 같아. 좋은 절충이라 생각해.

지영 | 뭐, 나는 이 카메라가 메인이 아니라 평소에는 그냥 기본 카메라를 쓰니까 끌릴 때마다 왕창 찍어두고, 까먹고 있다가 또 나중에 발견하는 재미가 있어. 구닥을 써보면 사용자 편리보다 아날로그라는 콘셉트를 일관적으로 밀려고 했다는 게 느껴지는데, 이게 큰 장점으로 느껴졌어.

재문 | 맞아. 이게 왜 좋냐고 물으면, 글쎄. 윈도우10에 윈도우98 테마를 깐 듯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성능까지 윈도우98을 쓰고 싶지는 않은 거지.

Q. 일부러 작은 뷰파인더를 쓰고 숫자 제한도 많고. 불편함을 구현하려고 했던 만큼 사용자들 입장에서 할 말이 많을 것 같아. 사용성 측면에서 개선됐으면 하는 것들 있어?

재문 | 처음 사용할 때 인터페이스에 좀 당황했어. 설치 전에 미리 검색해서 사용법을 알아둬서 바로 사용할 수 있었는데,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사진 찍기도 전에 사용법이 헛갈리니까 안 썼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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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컷을 다 찍으면 새로운 필름을 언제 쓸 수 있는지 시간이 표시된다. 기다림, 기다림의 연속. orz
아, 또 있다. 필름카메라 누르는 버튼이 있는데 터치식이야. 가운데 노란 동그라미인데 실수로 눌러도 찍혀. 그래서 필카 같은 버튼 터치감이 좀 아쉽더라. 음량키를 눌렀을 때 사진이 찍히는 기능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지영 | 원래 필카 빛 번짐 효과는 우연히 나타나는 건데 인공적으로 넣더라고. 그 필터들이 내 기준에서는 좀 과하고 많이 쓰다보니까 패턴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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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요즘 전원생활을 사진에 담고 있다.
재문과 지영, 그리고 뒤늦게 구닥을 써본 <블로터> 이기범 기자 | 뷰파인더가 너무 쩨쩨해! 하루 한 롤 제한도 너무해!

자연의 소수의견 | 다음 업그레이 때는 뷰파인더를 좀 크게 만들어준다고 하던데, 나는 지금 이대로 안 보였으면 좋겠어. 한 롤은 좀 적은 것 같고.

재문 | 3일 후 사진을 볼 수 있게 돼 있지만 아이폰 설정에서 시간을 3일 뒤로 바꾸면 바로 확인할 수 있어서 나는 불편함은 없···어···. 이건 개발자분들이 모르셨으면 좋겠는데!

지영 | (끄덕끄덕)

자연 | 나도 해봤는데 그렇게 빨리 받으니까 나름대로 허탈하더라고. 그 이후로는 그냥 기다려서 사진을 받아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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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디지털 세계의 사람들은 지름길을 찾아내는 능력들이 탁월하다. 어쨌든 특이한 카메라 앱이다. 불편한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구태여 구현해낸 이런 감성들을 보고 있자니 영화 ‘그녀’의 주인공의 직업이 ‘대필작가’였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인간에게 아날로그,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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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터
디지털 세상을 읽는 눈 
Updated  2017-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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